대담자: 이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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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자 명상가인 이기와 선생님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시집으로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그녀들 비탈에 서다」 「나봄」 「쉬고 또 쉬어라」 「허공춤」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 「시가 있는 풍경」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이 있다. 인도 남갈사원에서 달라이라마 티칭 및 캄바갈사원에서 수행, 미얀마 파욱명상센터, 담마마마까에서 수행. 한국 호두마을(위빠사나센터) 담마코리아(고엥까 위빠사나센터), 정토(수련원)에서 수행함 K-MBSR 명상지도자. KBS <이것이 인생이다>, KBS <아침마당>, SBS 스페셜 <몸의 유혹>, 강원 MBC <강원 365> 외 방송출연 다수. 현재 곡운구곡(谷雲九曲)의 고장 화천에서 마음치유를 돕기 위해 나봄명상예술원을 운영하고 있다.
● 이번 초대석에는 시인이자 명상가인 이기와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선생님, 15년 전 강원도 화천의 산중에 '나봄 명상 예술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과 '나봄'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의미도 함께 설명해 주세요.
▶ 오랫동안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치유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강원도 화천의 맑은 산중은 자기 성찰에 최적의 환경이었죠. '나봄'이라는 이름은 '나를 본다'라는 의미로,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답을 찾는 명상의 본질을 담았습니다. 동시에 '나의 봄'이라는 뜻도 품고 있어 마음의 겨울을 지나 새로운 생명력을 찾는 재생과 치유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 선생님의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 유년의 성장 과정이 선생님의 시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을까요?
▶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릴 때 쓰는 말 중에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말이 저에게는 놀임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제 첫 기억이 도랑물이 흐르는 다리 밑이었으니까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부모님이 다리 밑에서 거적때기 움막 생활을 하며 저를 낳아 저는 그곳에서 자란 거지요.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지며 허기를 해결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에게는 세 명의 새아버지가 있었는데요. 그 불편한 인연 속에서 구타를 당해 한 쪽 눈이 실명하고 여자아이로서의 수치와 모욕의 상흔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도 제대로 못 하고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거나 이런저런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저도 제 삶이 너무도 희한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과 울음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거의 어둠이 추후 성인이 된 저에게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쓰는 말 중에 ‘행운의 덕보다 불행의 덕을 더 많이 본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사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둠과 상처로 인해 내성이 생겼고 흔들리지 않는 담담함이 명상의 길로 이끌었고 그런 구력으로 명상시를 쓰기 시작한 거라고 봅니다.
● 유년의 상처가 오히려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어 인도와 미얀마에서의 전통 명상 수행 경험이 선생님의 시 세계와 명상 지도 방식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왔나요.
▶ 명상은 제 삶과 시 세계에 큰 변화를 안겼습니다. 먼저 제 삶의 변화로는 ‘무저항적 여유로움’의 마음 상태를 경험하게 했고 일상에서 유지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가 뭔가, 라고 물을 때 현자의 대답은 “얼마나 저항하느냐 그 차이다”라고 합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명상 훈련이 깊어지면서 몸의 경험을 통해 머리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정의(定義)와 기준(基準), 고정관념이 많을수록 저항력이 셉니다. 나와 다른 견해에 대한 거부감이 발생하는 거지요. 그러나 그 반대로 정의와 기준, 고정관념이 사라지면 밀어내려는 힘을 쓰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이런 이유로 제 삶은 보다 유연성을 회복하게 되었고 머릿속도 가벼워지고 호젓해졌습니다. 물론 시 세계에도 도움을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명상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풍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시의 ‘기교나 내포’보다는 무의미의 시를 쓰기 시작했고, 남들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겠지만 일종의 ‘산책’이고, ‘허공’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의미보다는 여백을 담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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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화산 자락에서 본 나봄명상예술원 |
● 선생님의 명상시집 중에서 대표작 「허공춤」에 담긴 주제를 들려주세요.
▶ 명상의 최종 단계는 깨달음이고 이 깨달음을 제 딴에 달리 말한다면 ‘허공’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동안에 ‘나를 속였던 세상’ 또 ‘세상을 속였던 나’에 대해서 퍽이나 애석하고 어리석었다는 반성이 하게 되면서 이렇게 살아가면 몸도 마음도 폐허가 되겠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내가 나를 보기에 참으로 가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자기 통탄과 자기연민이 솟구쳐 『허공춤』이라는 시집을 묶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화천에서 15년 이상 운영해 온 명상원에서 단순히 명상만이 아닌 예술과 결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인 명상센터와 달리 '예술명상'이나 '인성치유 교육'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는데, 이런 융합 접근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제가 97년에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언 27년을 시인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예술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늘 ‘예술적 삶’을 염두에 두며 살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명상 플러스 예술’의 통합적 치유를 고려하게 되었어요. 이후 이 치유에서 가장 큰 신명을 느끼면서 제가 가장 잘하는 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명상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명상은 곧 예술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숙한 예술을 매개로 어렵게 생각하는 명상을 접목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쉽게 명상을 접할 수 있는 바람을 담아서요. 이는 ‘명상을 예술로 예술을 명상으로’ 상호 보완을 통해 치유의 효과를 높이려고 했던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돌아보면 명상과 예술의 두 분야를 융합하길 잘 했다는 만족감이 듭니다.
● 이어서 나봄 명상원에 제공하고 있는 명상 프로그램의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 부탁드립니다.
▶ 나봄명상의 실제적 프로그램의 단계는 1단계 비움명상, 2단계 채움명상, 3단계 자애명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단계 비움명상은 그동안에 굳어진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비우는 과정입니다. 2단계 채움명상은 애고의 자리에 참된 자아가 들어앉을 수 있도록 정화하고 바꾸는 과정입니다. 3단계 자애명상은 바뀐 나의 활용으로써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회향하는 과정입니다. 그 각각의 단계에 맞는 프로그램들이 구성되어 있는데요. 소리와 파동으로 몸, 감각, 마음을 정화하는 소리파동테라피, 색채에너지를 이용한 칼라페라피, 시각의 확장, 생동감, 감성모드로 전환하는 영상예술치유, 고백, 감정이입, 배설적 글쓰기를 통한 시(詩)치유, 감정을 몸짓과 율동으로 표출하는 춤명상, 맛에 치우치지 않는 오감을 다스리는 먹기명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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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 2일 코스, 나봄 명상캠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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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체조 프로그램 |
● 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명상들에 대해 말씀 들려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오면서 현대인들의 내적 고통이나 치유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느끼시는지요.
▶ 나봄명상예술원을 다녀간 사람들은 많습니다. 지금도 인연이 이어져 정기적으로 오가는 도반들도 적지 않고요. 그들에게 보이는 변화는 주로 이런 것 같습니다. 첫째, 쥐고 놓지 못했던 또는 습관처럼 불안해하고 강박에 쫓기던 사람들이 자신을 풀어주는 삶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둘째로는 나에게만 집중되었던 관심과 사랑이 주변인 또는 더 넓게는 인간 외에 타 생명에게까지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세 번째로는 응어리져있던 마음의 불편함, 애를 들어 원망, 적개심, 불만 등의 부정적 마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 인도와 미얀마에서의 전통 수행 경험과 고엔카 위빠사나, 서구의 K-MBSR 등의 체계적인 수행법을 익혀 이를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점이 많은 주목할 받고 있는데요. 이 동서양의 두 명상법을 지도하는데 저희 독자분들을 위해 쉽게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일상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빠사나 명상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청소하는 동안 마음챙김 명상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방법은,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입니다.
먼저,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눈을 감거나 반쯤 감은 상태에서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에 집중하세요. 이 방식은 의도를 명징하게 부여하게 함이며 더불어 고요의 환경을 만들고 그 고요의 환경을 바탕으로 청소명상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들어가고 나가는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면서, 숨을 들이쉴 때와 내쉴 때의 감각에 의식을 두세요. 생각이 물러가고 어느 정도 고요해졌다 싶으면 청소를 시작하세요. 손이 빗자루를 잡거나 걸레를 들고 움직일 때, 그 감각에 의식을 집중하세요.
손이 어떤 촉감인지, 도구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어떤지 세심하게 살펴보세요. 이때, 냄새나 소리, 촉감 등 모든 감각에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한 감각에 집착하거나 그 감각을 혐오로 붙들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 작용도 지켜봐야 합니다. 또한 청소하는 동안 생각이 산만해지거나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간다면 바로 알아차리세요. 불안과 근심 때문에 많은 생각들이 부표처럼 떠오릅니다. '아 ㅡ 이 생각이라는 것이 그렇구나.'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청소하는 지금 여기로 생각이 돌아오게 됩니다.
이 과정이 일상에서 반복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집중력과 평온함이 생깁니다. 또한, 더럽다는 감정과 힘들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더라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이것은 지금 자연스러운 경험일 뿐이구나." 라고 인식하며 선택하는 태도가 아닌 바라보는 관조적 자세를 유지하세요.
이렇게 하면, 청소라는 일상적인 행동이 곧 명상 수행이 되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안정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 선생님께서 나봄 명상원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꿈과 비전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들려주세요.
▶ 제가 이 자리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부끄럽지만 ‘홍익생명’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대상에게나 다가가 그들의 원만하고 편한 삶을 위해 돕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라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면 최고겠습니다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살아가겠습니다. 추후 경제적으로 여력이 되면 점진적으로 정원형 허브·화훼농장을 조성하고 그 규모와 부대시설을 넓혀 6차 산업의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쉼 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의 복합서비스 장소로 만들어 소외층과 지역민들이 함께하는 공동체의 행복과 나눔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개인의 힘든 경험을 예술과 명상으로 승화시켜 오셨습니다. 격동의 삶을 평정과 자각으로 전환하는 여정을 걸어오신 선생님께서 내면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분들께 가장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요? 이 질문을 끝으로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속지 마십시오.’라는 말입니다. 내 기억, 감정, 생각, 느낌 이런 심리적, 정신적 작용에 속지 마시라는 겁니다. 이 말은 어떻게 들으면 매우 오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참하게 저 자신에게 속아왔기 때문에 애원하듯이 말씀드리고 싶은 대목입니다. 믿을 것이 없습니다. 내 기억, 감정, 생각, 느낌 이런 것들이 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연 화합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인연 화합이 그치면 사라지고야 말 것들입니다. 내 기억, 감정, 생각, 느낌과 동일시하는 작업이 우리 일상의 습관입니다. 내 기억, 감정, 생각, 느낌의 이 관념을 마치 어떤 대상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세요. 하늘의 뜬구름을 바라보듯이 그냥 대상으로 봐보세요.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말고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고요한 틈이 보일 것이고 그 틈 안에서 잠시 쉬십시오. 그 잠시가 깊어지고 길어지면 영속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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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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